오드리 헵번

 

 

 

 

 

 

 

 

 

 

 

 

 


출처 : theqoo


◎ 미의 여신으로 칭송받는 헵번이지만 본인은 이런 외모로 영화배우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풍만하고 글래머러스한 핀업걸 몸매의 마릴린 먼로 st이 할리우드 대세였으므로

    헵번같이 너무 슬림한 스타일은 전형적인 미인으로 인정받는 유형이 아니었음......헵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 10대 시절의 대부분을 나치 치하의 네덜란드에서 자라며 온갖 처참한 고생을 다 겪었기에 평생 전쟁영화 출연은 사양했다고 한다.

    몸무게가 39kg까지 이를만큼 아사 직전의 상태였다가, 네덜란드 병사가 준 초콜릿을 먹고 간신히 죽을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이때 극심한 기아와 영양실조로 생긴 그윽한 다크서클과 마른 몸매는 오히려 그녀의 미모를 더 업그레이드 해주는 요인이 되었다

 

 

 

 


◎ 명품 브랜드 지방시를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로 격상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영화 사브리나에서 입고 나온 지방시 팬츠와 플랫은 일명 '사브리나 룩'이라 불리며 세계적인 유행이 되었다. (3번째 사진)

    지방시는 이후로도 헵번에게 의상을 협찬하며 지방시 열풍을 불러 일으켰는데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헵번에게 협찬해줬던 지방시 블랙드레스와 긴 벨벳 장갑은 아직도 '헵번 스타일'로 유명

 

 

 

 


◎ 그 외에도 로마의 휴일에서 선보인 단발 헤어컷은 일명 '헵번컷'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5번째 사진)

     짙은 눈썹과 큰 눈을 강조한 헵번 메이크업,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선보였던 헵번 선글라스, 헵번 파이프까지

     그녀가 걸치고 나오는 거의 모든것이 세계적인 유행이 되었기에 당대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이 각별히 사랑한 여배우기도 했다

 

 

 

 


◎ 하지만 헵번 본인은 그닥 명품이나 사치를 좋아하지 않았고 매우 검소한 성향이었다.


    화려한 파티를 싫어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하거나,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가지고 싶어했던 재규어 승용차도 가족이 다 탈수도 없고 장보러 갈때 쓰지도 못한다고 끝내 구입하지 않았다.

 

 

 

 


◎ 당시 할리우드 여배우들 사이에서는 헵번의 마른 몸매를 보고 거식증 아니냐는 뒷담화가 돌기도 했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파스타와 달콤한 디저트류를 좋아했고, 단지 엄격한 식단관리와 운동으로 절제했을 뿐이라고 한다

    다만 초콜릿을 너무 좋아해서 다른 간식은 절제하더라도 초콜릿만큼은 적당히 먹어주는걸로 자기 자신과 타협했다고 한다

 

 

 

 


◎ <사브리나>를 찍을 때는 전문 요리사 수준의 요리를 배웠고, <파계>를 찍을때는 실제로 수녀원에 들어가서 수녀수업을 받는 등


    매 역할마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당시 대중들이 헵번에게 원하던 마냥 요정같은 이미지를

    헵번 본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후반기에는 미망인이나 청각장애인 등 기존의 이미지와 다른 역할로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 영화계에서 은퇴한 이후 행보로도 유명한데, 유니세프 대사로서 제 3세계 오지에서 아동구호운동과 인권운동으로 노년을 보냈다.


    1993년 암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소말리아에서 아이들을 도와주며 봉사활동을 하는 헵번의 모습(마지막 사진)은

    젊은 시절보다 더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았다. '오드리 헵번의 유언'이라는 시에서도 이러한 나눔과 베품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